이경석 LEE Kyeong Seuk

느리게 흘러가는 경주의 모습을 느긋하고 따뜻하게 그려나가는 이경석 작가를 소개합니다.

불상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나요?


작가의 섬세한 손길 끝에 단단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귀엽고 친근한 부처 그림에 눈길이 계속 갑니다.


작가는 경주의 능선을 따라 산책하고 남산을 오르면 만났던 불상에서 치유의 힘을 발견합니다. 

외할머니와 닮은 불상에서 포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산과 그곳의 불산 12 존을 캔버스에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이어서의 온리 원(Only One) 프로젝트에서는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려낸 불상 그림을 소개합니다.

섬세한 색연필 드로잉 속 인자한 미소의 불상을 

대담한 라인을 물감으로 그린 친근한 불상의 모습을 감상해 보세요.


작가의 능선 산책을 따라 여러분의 마음에도 고요함과 평안이 깃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남산, mindfulness (2023)

마음을 치유하는 경주 불상 12존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에 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남산 불상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직접 경험하며, 치유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탐구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편견 없는 시선으로 관찰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기록했습니다.


더불어 탐구한 내용을 기록집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작업이 경주 남산이 오래도록 품어온 보물을 

발견하는 마법 같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결핍의 뿌리를 찾아서>


나는 빈틈없이 지쳐있었다.

그 좋아하던 그림이 몸과 마음을 버려놓은 탓이었다.

어느 날, 불행을 종류대로 담은 소포가 집 앞에 도착했다.

갑상선암, 공황장애 그리고 유통기한이 없는 슬픔.

수술과 갖가지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은 한없이 더뎠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요가원을 찾았다.

병마와 두려움으로 상해버린 몸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기에.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해 식탁에는 올바른 음식을 올렸다.

산을 타기도, 강을 따라 걷기도 했다.


그간의 삶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모든 것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더 깊은 심연으로>


그렇게 나는 어찌 살았는데, 누군가는 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암 선고를 받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던 동료가 세상을 등졌다.

죽은 게 나였어도 삶이 이토록 밉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살던 도시를 미련 없이 떠났다.

붓과 물감은 여전히 원망의 대상이었다.

화실 문은 굳게 닫혔고, 캔버스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갔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생각보다 쓸쓸했고, 나는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때아닌 방황을 시작했다.

<능선을 따라 다시 만난 삶> 


능선을 따라 매일 걸었다. 마음을 다독이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기묘한 모습의 봉황대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 능묘는 죽은 친구가 좋아하던, 어린 왕자에 나오는 행성을 쏙 빼닮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경주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봄이 찾아왔다. 

새가 새순을 틔운 나무를 찾듯, 사람들도 다시 붓을 든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은 단연 아이들이었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고향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소란을 일으키고 다녔다. 

아이들과 나는 틈만 나면 작당 모의를 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푸른 여름이면 봉황대 그늘에서 그리운 사람을 떠올린다. 

어린 왕자를 먼저 떠나보낸 조종사처럼, 

바오밥나무같은 봉황대의 나무들을 보며,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삶을 이어간다. 

<봉황대 이어서 경주 남산>


그간 봉황대의 '겨울과 봄' 사이 풍경을 그림으로 담은 개인전과,

'경주 남산'의 마음을 다독이는 불상 12존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는

개인전을 차례로 기획했다.


봉황대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 날에는 남산을 찾았다.

어떤 날은 길을 잃기도, 

어떤 날은 우연히 외할머니를 닮은 불곡 마애 여래 좌상을 만나기도 했다.


그 신비한 기억을 화폭에 고루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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